"자막이 늦게 뜰 때가 있잖아요. 그 사이에 제가 먼저 알아들은 게 처음이었어요."
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애니를 봤어요. 자막 없이는 하나도 못 알아들으면서도 계속 봤습니다. 그러다 어느 날, 자막이 화면에 안 뜨는 순간이 있었어요. 스트리밍이 잠깐 끊겼던 것 같은데, 그때 캐릭터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게 좀 답답하더라고요.
엄마한테 일본어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'너 그거 두 달 하다 말 거잖아'라고 하셨어요. 사실 저도 그럴 것 같긴 했어요. 피아노도 그랬고 복싱도 그랬거든요.
근데 첫 수업이 생각했던 거랑 달랐어요. 선생님이 제가 요즘 뭐 보냐고 물어보셔서 얘기했더니, 그 다음 시간에 그 애니 대사를 몇 줄 뽑아 오셨더라고요. 제가 아는 장면이니까 무슨 뜻인지 대충 감이 왔고, 그걸 글자로 보는 게 신기했어요. 저는 그냥 소리로만 알고 있었던 거니까요.
제일 기억나는 건 반년쯤 됐을 때예요. 새 화가 올라왔는데 자막이 좀 늦게 붙었어요. 예전 같으면 자막 나올 때까지 기다렸을 텐데, 그날은 그냥 봤어요. 다 알아들은 건 아닌데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더라고요. 그게 진짜 이상한 기분이었어요. 뿌듯하다기보다는 좀 얼떨떨했어요.
요즘은 일부러 자막을 끄고 한 번 보고, 그 다음에 자막 켜고 다시 봅니다. 틀린 게 많은데 맞힌 것도 있어요. 맞혔을 때가 진짜 재밌어요.
"공부한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계속하게 됐어요."
